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Nintendo 64 (문단 편집) === 롬 팩의 문제 === > '''[[스퀘어]]가 지향하고 있는 대용량의 화상이나 음성을 처리해서 축적하기 위해서는 [[CD|CD-ROM]]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가격적인 면에서도 종래의 마스크 롬([[카트리지]])으로는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실현 불가능하다.''' >---- >- [[사카구치 히로노부]] 독점 인터뷰, 주간 패미통 No.376, 1996년 3월 1일호, p110~111 개제 요약하자면 억측과는 달리 [[닌텐도]]의 선택에는 합리적인 근거와 그를 통해 구현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나 그러한 선택은 시대의 요구 방향, 장점의 극대화, 제약 사항을 극복하는 통찰력 등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닌텐도의 게임기는 진작부터 롬 카트리지의 용량 한계로 인한 개발에의 압박이 생겨났고, 닌텐도 역시도 진작부터 CD-ROM 프로젝트를 개시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를 전후하여 이미 멀티미디어 붐이 일며 [[CD]]의 대용량을 활용하여 고품질 음성과 동영상을 채용하는 흐름이 생겨나 차세대 게임기에서도 CD-ROM을 당연히 채용하리라는 기대가 만연했다. 그러나 닌텐도는 그런 시장의 요구를 애써 부인하며 또다시 카트리지를 선택했고 이는 많은 서드파티들이 [[PlayStation(1994)|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닌텐도 64로도 동영상이나 음성을 담는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나 간혹가다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이 발매하는 소수의 멀티플랫폼 게임들의 동영상이나 음성은 여지없이 열화되거나 삭제되었다. [[바이오하자드 2]]가 닌텐도 64로 이식되었지만 동영상 해상도는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의 1/4로 떨어졌고, 음성도 둔탁해졌다. [[카트리지]] 팩은 로딩 시간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닌텐도 64의 카트리지 최대 용량은 64MB뿐이었다. 여기에 닌텐도의 카트리지는 제조와 유통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점들이 많았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드파티를 불러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닌텐도/비판#s-7]] 참고. 때문에 당시에는 닌텐도가 롬 팩을 고집했던 이유를 두고 '저장 매체를 CD로 바꾸면 롬 팩 공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생산비를 선결제로 받아 유통까지 해 먹는 사업 구조가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이라 분석하는 억측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다. 심지어 '선결제로 받은 막대한 비용으로 이자 수익을 얻는다' 같은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애시당초 닌텐도의 위탁 생산은 상품을 완성하는 데에 있지, 롬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체를 바꾼다고 한들 위탁 생산 체제가 무너질 수는 없다. 만약 닌텐도가 위탁 생산 비용과 로열티 수입을 중시했다면 오히려 서드파티의 참가를 독려하며 게임 발매를 늘렸어야 하는 것이 정상일텐데, 이때의 닌텐도는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조잡한 게임 백 개보다 고급 게임 하나를 제공하겠다며 있는 서드파티마저 쫓아낼 정도였다. 또한 닌텐도 역시 롬 카트리지 이외에도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닌텐도 파워]] 등으로 카트리지 생산 이외의 게임 배포 방법을 시도해왔으며 [[64DD]] 역시 일찌감치 발표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롬 공장을 포기할 수 없어서' 라는 추측은 여러 관점에서 볼 때 근거가 떨어진다. 실제 당시 닌텐도 수익에서 로열티 수익은 25%(이것도 크다고 할 수 있지만)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보다는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CD]]라는 매체 자체에 거부감이 강했고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달랐기 때문에 그대로 롬팩을 고수하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이런 대용량 게임들에 대한 거부감은 [[게임큐브]]로도 이어지게 된다. 또한 [[포켓몬스터]]의 대성공도 닌텐도의 이런 확신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야마우치는 '대용량 게임 같은 걸 만들면 개발사는 개발비를 감당 못하고 죽게 된다'라거나 '[[멀티미디어]]가 어디있나? 그런건 어디에도 없다' 같은 어록을 남길 정도였고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시절 겪었던 느린 로딩 역시 CD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하드웨어 개발 당시에도 레어나 닌텐도의 정보개발부에서는 롬카트리지의 채용을 원했다고 하며,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1995년도의 [[https://web.archive.org/web/20140614012324/http://www.edge-online.com/features/from-the-edge-archives-june-1995-shigeru-miyamoto-on-battling-it-out-with-sega-and-sony/|인터뷰]]에서 [[CD]]의 단점들을 하나하나씩 지적하면서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꼭 고용량 매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라고 본인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으며, 그로부터 1년 후의 [[http://shmuplations.com/mariokart64/|인터뷰]]에서도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당시에 [[플로피 디스크]]를 채택함으로써 겪었던 문제점을 언급하며 "다른 닌텐도 64 게임들도 마찬가지지만 [[마리오 카트 64]]에서 총 16개의 코스를 수록하고 4인 대전 시 최대 카트 8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만약 [[CD|CD-ROM]]을 사용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카트리지]]를 채택한 것인데 좀처럼 이해받지 못 한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미야모토가 언급했듯이,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하드웨어 구조라면 [[슈퍼 마리오 64]]나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같은 게임의 구현은 어렵게 된다. 또한 [[소니]]의 사에키 마사시(佐伯雅司)는 [[PlayStation(1994)|플레이스테이션]]이 [[CD]]를 매체로 선택한 이유조차도 용량보다는 유통 상의 문제 쪽이 압도적이었다고 언급했었다. 물론 여기에는 CD를 다루는 기술의 발전으로 로딩 문제에 대한 개발사들의 걱정을 덜 수 있었던 것과 함께 자사 CD 프레스 공장에서의 생산, 유통망 활용으로 게임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싸게 내놓았을 뿐더러 추후 하드웨어의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설계 구조로 게임기도 싸게 내놓을 수 있었던 등 대단한 통찰력이 있었기에 닌텐도를 압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높은 생산원가는 닌텐도도 극복이 힘들었는데. 닌텐도는 닌텐도 64가 출시된 해인 1996년에 나온 게임들은 모두 9,800엔의 비싼 가격으로 내놨으나, 소니가 5800엔으로 게임의 가격을 확 낮추는 바람에 이듬해부터는 대체로 6,800엔 수준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게임 가격을 낮추어 내놓았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세가새턴과의 본격적인 경쟁이 붙으면서 베스트 판같은 재발매 게임들은 2,800엔 그리고 SIMPLE 시리즈같은 싸구려 게임들은 1,500엔으로 덤핑 공세를 펼쳤고. 생산원가가 높아 덤핑이 불가능한 닌텐도 64는 그냥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닌텐도도 부족한 용량과 원가를 의식해서 [[게임큐브]]를 기점으로 거치형 기기에서는 광학 매체로 갈아탔지만 [[휴대용 콘솔 게임기|휴대용 게임기]]에는 여전히 롬 팩을 사용한다.[* 휴대용 기기에 광 드라이브를 넣으려면 거치형 기기와 다르게 충격 보호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매우 비싸진다. [[플레이스테이션 비타]]에서도 광 드라이브가 아닌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했다.] 현대의 롬은 과거의 마스크 롬과는 달라 많이 저렴해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레이 디스크]]의 생산 단가가 2달러에 불과하지만 [[닌텐도 스위치]]의 게임 카드 생산 단가는 여전히 높아서 동일한 게임이 멀티 플랫폼으로 나오면 스위치 버전의 가격이 10달러 정도 더 높다. 그래서 대용량 게임 제작사들은 패키지의 용량을 제한하고 추가 콘텐츠 다운로드를 필수로 박아두는 실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